눈이 간지럽다.
비슷한 생각을 한 지 이틀 정도 되었다. 오른쪽 눈에 생긴 문제다. 먼지라도 들어간 것처럼, 이물감이 든다. 눈의 일부가 아닌 불청객이 눈알 옆에 착 붙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괜스레 눈동자를 둥그렇게 굴려 보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종종 그러듯이 먼지 같은 것이 눈과 눈꺼풀 사이 틈새에 들어간 줄로만 알았다. 금방 밖으로 나오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 시간쯤 되었을 무렵에는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눈물샘이 만들어 내는 물로는 금방 해결되지 않는 일이었다. 먼지를 씻어내 버리기 위해 인공눈물을 찾았다. 온 구석을 뒤져 보아도 필요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겨우 찾아낸 일회용품은 언제 열었는지도 모를 상태라 진작 폐기되었어야 할 운명이었다. 한숨을 쉬며 플라스틱 용기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고작 작은 먼지 하나 때문에 약국까지 가기에는 번거로움이 지나쳤다.
잠시 생각하다가 세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도꼭지를 들어 올리자 깨끗한 물이 흘렀다. 오른쪽 눈을 물줄기에 갖다 대려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어차피 한쪽 눈만 크게 뜰 수는 없는 거였다. 수돗물이 눈알에 닿는 순간 조금 움찔할 수밖에 없었지만, 몇 초 동안 가만히 서서 물과 약간의 시간을 함께 흘려보냈다. 물 범벅이 된 얼굴을 닦고 눈을 몇 번 끔뻑거렸다. 속눈썹마다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왠지 모르게 두 눈이 무거워진 기분이었다. 물에 젖으면 눈도 무거워질 수가 있나?
그러고 나서도 몇 시간이 지나도록 눈에 들어간 그것은 존재감을 감추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눈에 무언가 들어갔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있는 힘껏 눈을 비벼 보았다. 마찰로 조금 더 따뜻해진 눈꺼풀 밑에는 여전히 까끌까끌한 감촉이 남았다.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한 번도 아프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아픈 건 아니었다. 그저 신경이 쓰일 정도로만 이질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내 눈이 거기 있다는 것을 이렇게까지 의식해 본 것은 처음이다. 얼굴 앞쪽 중앙에는 코가 있고 콧대와 이어진 눈썹이 양쪽에 자리하고 있다. 눈썹 밑에는 깜빡거리고 굴러다니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눈이 두 개 박혀 있다. 사실 눈을 깜빡이고 움직이는 것도 안구 자체가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주변 근육에 의한 것뿐이다. 그러니까 눈은 극도로 수동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한 냄새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언젠가부터 그 냄새를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익숙함에 점차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다. 후각도 그렇고 청각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새로운 감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라고 들은 것도 같다. 그러나 오른쪽 눈의 감각은 무뎌지지 않았다. 더 날카로워지지도 않았지만, 처음 느끼기 시작했을 때와 정확히 같은 강도로 주인을 괴롭히고 있었다. 감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다. 사실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말이다. 무시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야 한다. 의도를 갖는다는 말은 곧 주의를 기울인다는 말과 같다. 다른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워 보려고 할수록 오른 눈의 문제가 커질 뿐이었다. 눈알이 머리통만큼 커진 것 같기도 했다. 눈을 굴릴 때마다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른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차 있는 기분이었다. 한쪽 눈은 나의 것이고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으나 반대쪽은 몸의 일부가 아닌 무언가에 지배당하는 경험이었다. 머리로는 분명히 알았었다. 왼쪽 눈을 움직이면 오른쪽 눈도 같은 궤도를 평행하게 그린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모든 것이 상식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늦었으므로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지 않아도 되어서 안도했다. 지난 반나절 동안 눈을 감으면 오른쪽 눈이 자연스럽게 느껴짐을 알게 되었다. 이 기이한 상황에 유일하게 위안이 될 만한 변칙이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 가장 중요한 감각을 포기하는 꼴이라니. 그래도 오른쪽 눈만 감고 있는 상태로는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덮고 잠에 들었다. 어쩌면 자고 일어나면 괴로움이 멈추고 눈 생각 따위는 전부 잊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약간의 희망을 알게 모르게 가졌던 것도 같다.
잠에서 깨고 난 뒤 눈을 뜨기가 망설여졌다. 어제의 감각이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될까 두려웠다. 혹시나 눈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이대로 영영 눈을 뜨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비합리적인 생각의 사슬이 끊어지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세상에서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품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도. 오른쪽 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불순물로 느껴졌다.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떠 봐도 어제와 똑같은 불안함이 덮쳤다. 이 눈이 몸의 일부가 아닌 것 같다는 공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 거울 앞으로 향했다. 얼굴을 유리 앞에 바짝 대고 위아래 눈꺼풀을 한껏 들어 올렸다. 어제 몇 번이나 했던 짓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를 듯싶었다. 여기저기 벌겋게 터져 버린 실핏줄이 눈에 들어왔다. 잠을 설쳐서 그렇겠지. 사실 눈 자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을 거다. 눈꺼풀과 안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아무리 두 눈을 굴리고 눈꺼풀을 까뒤집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눈알 겉에 이물질이 붙은 게 아니다.
병원에 갈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의사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할 테고. 시야에도 문제가 없었다. 오른쪽 얼굴에 처음 보는 유리알이 박혀 있는 듯한 느낌이지만 물체에 반사된 빛은 분명 내 우측 시각장에도 들어오고 있다. 그저 느낌일 뿐이다. 한쪽 눈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내 증상의 전부이다. 그걸 고쳐줄 약이나 수술은 없다.
아무에게도 눈의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대화의 주제로 삼기 좋지도 않을뿐더러 내 눈을 유심히 바라볼 시선을 받기 싫었다. 아직 이 문제를 눈치챈 사람은 없을 거라고 거의 확신한다. 표정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을 수는 있지만, 그 이유가 이틀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눈의 이물감 때문이라고 추측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불쾌한 소식을 들었다거나, 형편없는 식사를 했거나, 복잡한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으리라.
어차피 오른쪽 눈은 어느덧 길게 자란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져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왼쪽이었던가? 습관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생각했다. 이건 순전히 나의 의지 문제다. 언제든지 스스로 눈을 뽑아 버릴 수도 있다. 고통이 느껴질지는 직접 해 봐야 알겠지만. 아니면 그냥 이 불쾌한 감각과 죽을 때까지 공존하며 매일매일을 버텨 볼 수도 있다. 그 두 가지 말고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 이 감각이 어느 순간 서서히 사라지고 없어져 버리는 일은 절대 없음을 알았다.
본다는 것은 두 눈을 동시에 쓰는 일이다. 그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한쪽 눈으로도 거의 완벽한 시야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시야가 완전히 다른 차원을 보는 능력을 주기도 한다. 적어도 그런 일이 생겼다고 이해하고 있다. 이해했다는 말은 잘못 고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당신을 볼 수 있게 된 사건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 어느 순간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나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